유방암 환자 오랜 염원 ‘엔허투’ 급여등재 [결산 2024]
||2024.12.29
||2024.12.29
올해는 높은 효능과 대체 불가 신약으로 평가받는 유방암 치료제 ‘엔허투’가 오랜 논의 끝에 건강보험 급여를 획득한 해이다. 범국민적 관심을 넘어 정치권에서도 주목한 엔허투 급여 적용가 성사되면서 국내 환자에 새로운 희망이 생길지 관심이 집중됐다.
아스트라제네카와 다이이찌산쿄가 공동 개발한 유방암 치료제 ‘엔허투(성분명 트라스투주맙데룩스테칸)’는 보건복지부 고시에 따라 올해 4월 건보급여를 획득했다.
엔허투는 사람상피세포성장인자 수용체2(HER2) 양성 유방암 환자의 표준 치료로 쓰는 허셉틴(트라스투주맙)과 세포 독성 항암제(데룩스테칸)를 붙인 항체-약물 접합체(ADC) 신약이다.
엔허투는 암세포 표면에 발현하는 특정 표적 단백질에 결합한 단일클론항체 ‘트라스트주맙’과 강력한 세포사멸 기능을 하는 ‘데룩스테칸’을 링커로 연결한 ADC다. 엔허투는 기존 치료제로 치료가 어려운 HER2 발현 유방암·위암 환자에게 사용 가능하기 때문에 큰 관심을 받아왔다.
HER2란 암 세포의 표면에 붙어 세포의 성장과 분열을 촉진하는 신호를 보내는 수용체다. HER2 양성 암의 경우 일반적인 암보다 진행이 빠르고 공격적인 특성을 보인다. 최근 의학계 보고를 보면 유방암 환자의 약 20%가 HER2를 가진 양성 유방암 환자다.
엔허투는 국내에서 ▲이전에 한 가지 이상의 항 HER2 기반의 요법을 투여받은 절제 불가능한 또는 전이성 HER2 양성 유방암 환자의 치료 ▲이전에 항 HER2 치료를 포함하여 두 개 이상의 요법을 투여받은 국소 진행성 또는 전이성 HER2 양성 위 또는 위식도접합부 선암종 치료제로 2022년 9월에 허가를 받았다.
그간 엔허투는 국내에서 급여가 인정되지 못해 환자 접근성이 낮은 치료제로 평가받았다. 엔허투 1회 투약은 최대 1000만원에 육박하며 1년 기준으로 환산 시 1억2000만원에 달한다.
엔허투의 비싼 약가 때문에 국민청원을 통해 15만명을 넘는 국내 유방암 환자와 가족들의 급여 등재 요구가 빗발치기도 했다. 지난 1월에는 한국유방암환우총연합회가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서울지부를 방문해 ‘엔허투 보험 급여 촉구에 동참한 전국 6451명의 서명서’를 전달하기도 했다.
당시 서명서를 제출한 유방암 환자는 “이미 쓸 수 있는 치료제는 다 썼지만 내성이 왔다. 지금급여가 논의 중인 엔허투는 저와 같은 환자에게 마지막 생명줄이다.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 하루하루가 얼마나 절박한지 헤아려 달라”며 “엔허투는 기존 약보다 살아갈 수 있는 날을 4배 연장시킨 항암제인데, 이렇게 효과적인 약을 쓸 수 없다는 절망감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엔허투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37곳 중 24곳에서 보험급여를 획득하는 등 미충족 수요 질병에 대한 치료제로 급부상했지만, 지난해 허가를 획득한 이후 건보급여에 대한 심사가 지지부진한 상태였다.
그러나 정치권도 엔허투 급여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갖으며 올해 건강보험 적정성까지 인정돼 최종 급여 등재까지 완료됐다.
규제 당국으로부터 지지부진한 급여 협상이 이어지던 엔허투가 단번에 급여 등재를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신약의 경제성 평가 기준인 ‘점증적 비용-효과비(ICER)’ 평가가 변화한 덕분이다.
통상 ICER은 임계값에 1인당 GDP를 탄력적으로 적용하는데, 항암제는 5000만원 일반 약제는 3000만원이 임계값으로 알려져 있다. 엔허투는 ICER 임계값 5000만원이 넘지만, 이를 적정수준으로 내려 합의를 이뤄낸 것이다.
특히 엔허투는 최근까지 효능을 입증하고 있어 다양한 환자들에게 치료옵션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달 엔허투는 미국 샌안토니오에서 열린 샌안토니오 유방암 심포지엄(SABCS 2024)에서 사람상피세포성장인자수용체2(HER2) 양성 전이성 유방암 환자에서 뇌전이에 관계없이 효능과 안전성을 입증했다.
이번 심포지언에서 공개된 임상3b/4상 DESTINY-Breast12 연구 결과를 보면, 엔허투는 HER2 양성 전이성 유방암 환자에서 뇌전이 여부에 관계없이 건강 관련 삶의 질(HRQOL)과 신경 기능 데이터에서 효능과 안전성을 나타냈다.
DESTINY-Breast12 연구에는 뇌전이가 있거나 혹은 없는 HER2 양성 전이성 유방암 성인 환자가 포함됐다. 그들은 이전에 전이성 뇌암에 투키사(투카티닙)를 제외한 최대 2가지 치료를 받은 경험이 있었다.
분석 결과, 엔허투는 HER2 저발현 전이성 유방암 환자의 무진행생존기간(PFS) 중앙값을 13.2개월로 개선해 항암화학요법군의 8.1개월 대비 질병 진행 위험을 38% 감소시켰다. 반응 지속기간(DOR)도 모든 치료군에서 항암화학요법 대비 개선됐다.
의료계 관계자는 “올해 엔허투의 급여등재는 국내 유방암 환자에게 새로운 삶의 희망을 제공할 정도로 중요한 사건”이라며 “내년에도 많은 환자들이 혁신 신약 혜택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김동명 기자
simalo@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