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인IT] 분명히 올 전기차 시대, 그러나 지금은…
||2024.12.13
||2024.12.13
자동차 산업에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떠오르던 전기차가 매서운 한파를 겪고 있다. 예상치 못한 크고 작은 일이 벌어지면서 전기차 위기론에 힘이 실리고 있다.
1885년 최초의 자동차가 등장한 이래 자동차 산업은 끊임없이 발전했다. 하지만 환경 문제가 자동차 산업을 강타했다. 환경 오염의 주범이 자동차라는 게 이유다. 이러한 상황에 완성차 제조사는 엔진의 크기를 줄이는 동시에 전기모터를 단 하이브리드(HEV), 플러그인 하이브리드(PHEV)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이에 만족하지 않고 완성차 제조사는 전기차로 눈을 돌렸다. 화석연료를 쓰지 않으며 유해 물질을 한 톨도 배출하지 않아 궁극의 친환경차라는 게 그들의 이론이었다. 너도 나도 전기차 개발에 뛰어들며 전기차로의 전환이 순탄해 보였지만 전기차 성장세 둔화라는 예상치 못한 변수를 맞이하며 분위기가 식었다.
높은 자동차 가격과 낮은 이용 편의성이 발목을 잡은 것이다. 거기에 국내에서는 벤츠 전기차 화재사고까지 겹치면서 안전성 문제까지 고개를 들었다.
전기차를 구입한 A 씨는 “환경을 생각하면 전기차를 구매하는 것은 분명 옳은 일이다”며 “내연기관 자동차를 이용할 때보다 적은 유지비용도 전기차의 큰 장점이다"고 말했다. 이어 "극히 드문 충전 인프라와 충전 소요 시간, 온도에 따른 주행거리 변화, 비싼 가격은 해결해야 할 문제다”며 “최근 전기차 화재사고가 발생하면서 주변 인식도 나빠진 상태라 지하 주차장에 진입하기 눈치가 보인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대다수의 전기차 소유자는 현실과 맞지 않는 제도 역시 전기차 확산을 가로막는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전기차에 대한 냉랭한 시선은 해외에서도 마찬가지다. 올해 3월 실시된 미국 갤럽 여론조사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 중 48%가 전기차를 구매하지 않겠다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전년 대비 7% 증가한 수치다.
맥킨지는 보고서를 통해 전기차 소유자 중 46%가 다음 차량으로 내연기관 차량을 구매할 가능성이 높다고 발표했다. 아울러 전기차를 소유한 가구의 89%는 전기차 외에도 내연기관 자동차를 소유하고 있으며 심지어 이들 중 81%는 내연기관 차량의 이용 빈도가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미국 매카닉 공공정책 연구센터는 “기후 변화 대책을 이유로 막대한 세금을 투입해 전기차 전환을 유도했지만 정작 효과는 측정할 수 없을 정도로 적었다”며 “전기차 구매 가능성이 지속적으로 줄고 있는 상황에서 구매를 독려하기 위해 보조금을 동원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고 지적했다.
전기차 기피 현상이 이어지자 피해는 고스란히 자동차 제조사로 옮겨 갔다. 새로운 수익 모델로 전기차가 떠오르면서 막대한 투자 비용을 투입했지만 판매 저조로 투자금 회수가 불가능해진 까닭이다. 대표적인 제조사가 포드다. 포드는 지난 2022년부터 2030년까지 300억달러(42조9330억원)을 투입해 신차의 40%를 전기차로 전환할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수요 둔화로 인한 전기차 사업 분야에 적신호가 켜졌기 때문이다. 포드는 전기차 사업 분야에서 37억달러(5조2991억원)의 누적 손실을 봤다. 반면 내연기관 판매 부문에서는 동일한 금액의 이익이 발생했다. 미국 에너지 전문 매체에 따르면 포드는 지난 분기 판매한 전기차 한 대당 6만달러(8586만원)가량의 손실을 기록한 것으로 예측했다.
포드의 전기차 손실은 주력 모델인 F-150 라이트닝 판매 저조가 주된 요인으로 작용했다. F-150 라이트닝의 3분기 판매량은 7162대에 그치며 1만대를 넘어서지 못했다. 이는 전체 F-시리즈 판매량의 3.6%에 불과한 수준이다.
이에 포드는 미시간주 소재 공장에서 F-150의 생산을 11월부터 내년 1월 6일까지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이 같은 결정은 수익성 악화와 악성 재고를 줄이기 위한 전력의 일환이라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글로벌 최대 완성차 업체 폭스바겐은 전기차 판매 부진 등의 이유로 실적 감소와 경영 위기를 맞고 있다. 폭스바겐 그룹에 따르면 올해 3분기 순이익은 15억7600만유로(2조3708억원)로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63.7% 줄었다. 1분기부터 3분기까지 합계 순이익 역시 30.7%나 줄은 89억1700만유로(13조4143억원)로 집계됐다.
최대 위기를 맞은 폭스바겐은 궁여지책으로 대규모 인원 감축과 공장을 폐쇄했다. 독일 공장의 문을 닫은 건 창립 이래 처음이다. 폭스바겐은 독일 내 10곳의 공장 중 3곳이나 가동을 멈췄고 전체 직원 임금도 10% 삭감했다. 또 2년간 임금 인상도 동결했다.
전기차 침체 상황이 이어지자 여러 완성차 제조사는 전기차 계획 수정에 나섰다. 포르쉐는 전기차 시장이 쪼그라들자 2030년까지 전체 생산량의 80%를 순수 전기차로 전환한다는 계획을 수정했다.
포르쉐를 경쟁 상대로 삼은 로터스 역시 내년에 내놓겠다던 소형 전기 SUV ‘Type 134’의 출시를 뒤로 밀었다. 시장 수요가 충분하지 않다는 게 이유다. 댄 발머(Dan Balmer) 로터스 유럽 CEO는 “불가피하게 당초 계획했던 완전 전기 스포츠카의 출시를 연기하게 됐다”고 말했다.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이 오는 것처럼 분명 전기차 시대는 도래할 것이다. 현재는 전기차에 대한 인식, 제도, 인프라, 그에 따른 판매량 모두 저조한 편이다. 이 시기를 무사히 넘기길 원한다면 각고의 노력이 필요하다.
자동차 제조사는 완벽에 가까운 전기차를 판매해야 하고 소비자는 전기차에 대한 인식을 바꿔야 한다. 그 중간에서 정부는 오작교 역할을 해야 한다. 제조사, 정부, 소비자가 유기적으로 연결된 만큼 누구 하나라도 제 역할을 하지 않는다면 전기차는 140년 자동차 역사상 최악의 악수라는 오명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허인학 기자
ih.heo@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