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차비 꼼수? 신종 카푸어?"…종이번호판 붙인 수입차, 이유가
||2024.12.10
||2024.12.10
“비싼 차 살 돈은 있고 주차비 낼 돈은 없나?”
“이런 것도 카푸어라고 해야 하나?”
아파트 주차장에서 종이 번호판을 단 외제차를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는 A씨의 사연에 달린 댓글들인데요. 얼마 되지 않는 주차비를 내지 않기 위해 불법행위를 저지른 차주에 대한 질타의 내용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차량 번호판을 위·변조하는 것은 물론 번호판 식별을 어렵게 하는 행위도 모두 법 위반 사안인데요. 종이 번호판으로 멀쩡한 차량 번호판을 가려놓은 행위, 어떤 법적 책임을 지게 될까요?
◇주차비 몇푼 아끼려다 형사처벌 대상될 수도
경기 화성시의 한 아파트에 거주하는 A씨는 지난달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실제 번호판 위에 종이 번호판을 덧붙인 차량을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했습니다.
이 아파트는 앞서 지난 3월 관리 규약을 개정했다고 하는데요. 달라진 규약에 따라 2대 이상 차량을 보유하고 있는 가구에 대한 주차비가 인상됐다고 합니다. 가구당 2대는 1만원, 3대는 10만원의 주차비가 각각 부과된다고 합니다. 이런 사정을 알고 있던 A씨는 종이 번호판을 덧붙인 게 주차비 부과를 피하기 위한 차주의 꼼수가 아닌가 추측했습니다. 그리고 그 추측은 여지없이 들어맞았죠. 아파트 관리사무소에 문의한 결과 해당 차량은 아파트에 등록되지 않은 차량으로 이미 등록한 차량의 번호를 종이 번호판으로 만들어 덧붙인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A씨의 사연이 전해지자 앞서 말씀드린 대로 종이 번호판을 단 차량의 차주에 대해 누리꾼들의 비난이 쇄도했는데요. “수입차 살 돈은 있고 주차비 낼 돈은 없나?” “꼼수를 막기 위해서라도 강제로 주차비를 징수할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해야 한다” 등의 의견이 특히 많았습니다.
자동차 등록번호판은 사람으로 치면 주민등록증과 같은 건데요. 차량마다 하나씩의 고유한 번호가 부여되고 이 번호를 통해 차량을 관리하게 됩니다. 만약 이 번호판을 위·변조하거나 알아보기 힘든 경우 심각한 상황이 초래될 수 있습니다. 일례로 차량의 주민등록증인 번호판이 가짜라면 사고를 내고 그대로 도주한 차량을 검거하거나 범행에 이용된 차량을 추적하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이에 번호판을 위·변조하는 행위는 물론 번호판을 가리는 행위도 무겁게 처벌합니다. A씨 사례와 같이 임의로 제작한 종이 번호판을 실제 번호판에 덧붙이는 행위는 자동차관리법에 따라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집니다.
◇종이 번호판 차량 몰고 강남 질주…실형 선고
종이 번호판을 붙인 차량을 몰고 다니다 실형을 선고받은 사례도 있습니다. 지난해 50대 공무원 B씨는 종이로 만든 자동차등록번호판을 부착한 차량을 운행하다 재판에 넘겨집니다.
B씨는 당시 과태료 미납 등의 이유로 차량 번호판을 영치 당하자 종이 번호판을 붙이고 차량을 운행하는데요. 자신의 집에 있는 프린터를 이용해 실제 차량 번호판과 유사한 글씨체로 가짜 번호판을 인쇄한 뒤 실제 번호판 크기와 동일하게 종이를 잘라 차량에 붙이고 다녔습니다. 위조한 종이 번호판을 단 채 약 4개월 동안 총 120회에 걸쳐 차량을 운행한 것으로 드러났는데요. 이에 B씨는 형법상의 공기호위조, 위조공기호행사, 자동차관리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됩니다.
법원은 어떤 판단을 내렸을까요? 1심에 이어 2심에서도 징역 6개월의 실형이 선고됐습니다. B씨 측은 재판에서 종이 번호판이 누구나 가짜인 것을 알 정도로 만듦새가 조잡한 것으로 위조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주장했습니다. 아울러 위법한 과태료 부과에 항의하는 뜻으로 종이 번호판을 제작한 것이라면서 이는 정당한 행위라고 주장하는데요.
법원은 이런 주장을 일축했습니다. 1심 재판부는 “다액의 과태료를 체납해 번호판이 영치되자 임의로 번호판을 주장하고 차량을 운행하면서도 이런 행위가 위법하지 않다는 자신만의 주장을 반복하고 있다”면서 유죄를 선고했습니다. 이어진 항소심에서도 재판부는 “1심 판단이 합리적 범위를 벗어났다고 볼 수 없다”면서 원심의 판단을 유지했습니다.
B씨에게는 자동차관리법 위반뿐 아니라 형법상의 공기위조·행사죄 혐의도 적용됐는데요. 번호판을 고의로 위조하고 이를 행사하려 했다는 점이 인정된 겁니다. 형법 제238조는 공무원 또는 공무소의 인장이나 기호 등을 위조 또는 부정 사용한 죄에 대해 정하고 있는데요.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할 정도로 처벌도 무겁습니다.
다만 공기호 위조·행사죄가 인정되려면 실제로 가짜 번호판을 사용하려는 목적이 있었다는 점이 입증돼야 합니다. 실제 번호판인 양 사용하기 위해 종이 번호판을 인쇄했고 또 이렇게 만든 번호판으로 다른 사람의 눈을 속이려 했다는 점이 인정돼야 하는 겁니다.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C씨는 자고 일어났더니 자신의 승용차 번호판이 사라져버리는 황당한 일을 겪었습니다. 이에 C씨는 굵은 매직펜으로 차 번호를 적은 종이 번호판을 대신 붙이 차량을 운행하는데요. 결국 C씨는 공기호 위조·행사죄 등으로 재판에 넘겨집니다.
사실 C씨 차량의 번호판은 C씨가 빌린 돈을 제 때 갚지 않은 탓에 채권 담보용으로 영치된 상황이었습니다. 이런 경우 번호판 영치와 동시에 해당 차량은 운행정지가 되는데요. 이런 사실을 모르고 있던 C씨는 사라진 실제 번호판 대신 종이 번호판을 만들어 달고 운행정지된 차량을 몰고 다니게 된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