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전기차 화인 규명하지 못한 경찰에 실망
||2024.12.03
||2024.12.03
지난 8월1일 인천 서구의 한 아파트에서 발생한 전기차 화재 원인이 결국 미궁에 빠졌다. 경찰이 '전기차 공포'를 불러일으킨 화인을 밝혀내지 못한 채 결론을 내려서다. 경찰·소방당국·국립과학수사연구원·벤츠사 등 관계자들이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 관련 발화점으로 지목된 전기차에 대해 합동 감식을 벌였지만, 무위로 끝났다. 이 화재로 인해 주민 23명이 연기를 흡입해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차량 87대가 불에 타는 등 아주 큰 피해로 이어졌다.
경찰은 화재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전담팀을 꾸리고 4개월간 수사를 벌여왔다. 총 3차례 합동 감식을 거쳐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 관리 시스템(BMS)에 대한 감정 의뢰를 진행했으며, 메르세데스 벤츠코리아 본사 등 4곳을 대상으로 압수수색을 벌이기도 했다. 인천경찰청 형사기동대는 지난달 28일 인천청 기자실에서 청라 전기차 화재 수사 결과 브리핑을 열고 “배터리 팩 외부 충격에 의한 발화 가능성 등은 확인했지만, 정확한 화재 원인을 규명할 수는 없었다”고 밝혔다.
국과수는 정밀 감정에서 차량 밑면에 외부 충격이 가해진 데 따른 배터리 팩 내부 셀의 절연 파괴로 불이 났을 가능성만 언급했을 뿐, 명확한 화재 원인을 밝히지는 못했다. 배터리 충전 상태·온도·용량 등을 확인할 수 있는 BMS가 불에 녹아버린 게 정확한 화인을 파악하지 못한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분석된다. 경찰은 화재 당시 전기차가 충전 중인 상태는 아니었고, 주차한 지 약 59시간 뒤에 불이 난 점을 미뤄 '배터리 결함'에 무게를 두고 수사에 나섰다.
경찰이 이번 전기차 화인을 밝히지 못하면서 벤츠사 측은 처벌을 면하게 됐다. 결과적으로 벤츠사에 면죄부만 준 꼴이 돼버렸다. 문제는 유사한 사고들이 잇따라 발생해도, 처벌할 대상을 명확하게 정할 수 없다는 점이다.
요즘처럼 면밀한 과학 수사가 진행되면서 거의 모든 사건·사고의 원인을 규명할 수 있는 데도, 실패한 경찰에 따가운 눈총을 보내게 된다. 경찰이 우리 사회의 '악'과 비위 사실 등 범법 행위와 싸우는 노고는 치하하지만, 많은 피해를 안겨준 전기차 화재 같은 상황을 해결하지 못한 데 대해 실망할 수밖에 없다. 경찰의 분투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