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미래 바꿀 항암제는?… 항암 신기술 대거 공개된 유럽 암학회
||2024.09.20
||2024.09.20
세계 최대 암학회 중 하나인 유럽종양학회 연례학술대회(ESMO 2024)가 막을 내린 가운데 행사 기간 중 다양한 항암제들의 성과가 대거 공개하면서 어떤 약물이 인류의 미래를 바꾸게 될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번 ESMO를 통해 신기술이 적용된 항암제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항암제 주류로 자리 잡은 항체약물접합체(ADC)부터 대세로 급부상하고 있는 방사성의약품까지 최신 연구결과가 쏟아지면서 차기 블록버스터(연매출 1조 이상 약물)를 가늠하는 자리로 평가받고 있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ESMO 2024가 13일부터 17일까지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개최됐다. ESMO는 미국임상종양학회(ASCO), 미국암학회(AACR)와 함께 세계 3대 암학회로 꼽히는 학술대회다. 각 기업들이 수 년간 개발해 온 항암 후보물질의 상업화 성공 여부를 평가하는 자리로 여겨져 업계 내에서는 매우 중요한 행사로 평가받는다.
올해 ESMO에서도 세계 최대 글로벌 제약사가 참가해 자사의 혁신 신약들의 최신 임상 자료를 공개했다.
우선 다국적 제약사 MSD는 자사의 항PD-1 면역항암제인 키트루다(성분명 펨브롤리주맙)의 고위험 조기 삼중음성 유방암(TNBC) 환자를 대상으로 한 임상 3상 결과를 공개했다. 키트루다는 지난해 매출 250억 달러(33조3000억원)를 기록한 세계 1위 의약품이다.
MSD가 공개한 임상은 키트루다를 수술 전 보조요법으로 항암화학요법과 병용한 이후와 수술 후 단독요법으로 사용한 뒤 전체 생존율(OS) 효과를 평가한 시험이다.
추적 관찰 기간 중앙값 75.1개월 동안 키트루다 수술 전후 보조요법은 고위험 조기 삼중음성 유방암 환자 치료에서 위약군 대비 주요 2차 평가변수인 전체 생존율을 유의미하게 개선하고 사망 위험을 34% 감소시킨 것으로 나타났다.
임상시험계획서에 명시한 탐색적 하위 분석 결과 PD-L1 발현, 종양 크기, 림프절 상태 등 사전에 정의한 하위군 전반에서 키트루다 수술 전후 보조요법의 이점이 일관되게 나타났다. 고위험 조기 삼중음성 유방암에서 수술 전후 보조요법으로 전체 생존율을 통계적, 임상적으로 유의미한 수준으로 개선한 면역항암제는 키트루다가 처음이자 유일하다.
손주혁 연세암병원 종양내과 교수는 이번 임상에 대해 “완치를 목표로 하는 조기암 치료에 있어서 전체 생존율 개선을 입증하는 것은 쉽지 않다”며 “전체 생존율 개선은 조기 삼중음성 유방암 환자의 생명을 살린다는 뜻이기 때문에 아주 의미 있는 결과다”라고 평가했다.
다음으로 주목받은 의약품은 전 세계 제약바이오 시장에 ADC 개발 열풍을 일으킨 ‘엔허투(성분명 트라스투주맙 데룩스테칸)’다. 일본 다이이찌산쿄와 영국 아스트라제네카가 공동 개발한 ADC기반 항암제 엔허투는 올해 ESMO에서 뇌 전이 유방암 환자에게 대한 효과를 입증했다.
이번에 공개된 임상은 HER2 양성 전이성 유방암 환자 중 뇌 전이 환자를 대상으로 한 3b/4상 ‘데스티니-브레스트(Destiny-Breast)12’ 데이터다.
임상 결과 전이가 안정적인 환자의 무진행 생존율(PFS)은 62.9%로 활동성 전이 환자 PFS(59.6%)와 큰 차이가 없는 것을 확인했다. 이는 뇌 전이 여부와 상관없이 엔허투가 동일한 유효성 및 안전성이 보장된다는 결과다.
그간 엔허투는 뇌 전이 환자에게 제한된 약물이었다. 하지만 이번 임상을 통해 HER2 양성 유방암 환자에게 좀 더 폭넓은 치료 옵션이 제공될 수 있다는 희망이 제시됐다.
해당 임상의 연구책임자인 낸시 린(Nancy Lin) 다나파버 암센터 교수는 “HER2 양성 전이성 유방암 환자 약 50%가 질병이 진행되는 동안 뇌 전이를 경험한다”며 “이번 데이터는 환자 치료를 결정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고 설명했다.
최근 미국식품의약국(FDA) 승인을 얻은 유한양행의 렉라자(성분명 레이저티닙)에 대한 임상도 공개됐다. 해당 임상을 통해 렉라자와 얀센의 리브리반트 병용요법이 글로벌 비소세포폐암 표준 항암제인 아스트라제네카의 타그리소보다 내성이 적다는 점이 확인됐다.
이번 ESMO에서 공개된 렉라자+리브리반트 마리포사 연구를 보면 병용요법 투여군 중 MET 변이가 증폭된 환자는 4.4%였다. 이는 타그리소 투여군(13.6%)보다 현저히 낮은 수치다.
특히 EGFR 돌연변이 발생과 관련해서 렉라자+리브리반트 투여군(0.9%)이 타그리소 투여군(7.9%) 대비 높은 변이 억제 효과를 기록했다.
벤자민 베스 프랑스 구스타브루시 암센터 교수는 “렉라자+리브리반트 병용요법이 타그리소 단일 요법 대비 내성 메커니즘과 복잡성을 줄이는 옵션을 제공할 것이다”고 강조했다.
이밖에 코로나19 팬데믹을 기점으로 주목받은 mRNA(메신저리보핵산) 백신이 암치료에 도움을 준다는 연구결과도 공개됐다. 모더나는 mRNA 백신이 암에 대한 면역 반응을 보였으며 암을 죽이는 세포까지 활성화한다는 점을 밝혀냈다.
데이터에 따르면 폐암, 흑색종 및 기타 고형암 환자 16명 중 8명의 종양 크기가 증가하지 않았으며 새로운 종양도 발견되지 않았다. 또한 mRNA 백신이 PD-L1과 IDO1이라는 두 가지 주요 단백질을 인식하도록 면역 체계를 활성화시켜 암 세포를 죽이도록 유도했다.
한미약품은 차세대 표적항암 혁신신약으로 개발 중인 ‘EZH1/2 이중 저해제(HM97662)’의 임상 내용을 공개했다. 한미약품은 암을 유발하는 단백질 복합체인 ‘폴리콤 억제 복합체 2’의 핵심 요소인 EZH1과 EZH2를 동시에 제어해 항암 효과를 높이는 신약 후보물질을 개발 중이다.
HLB는 미국 자회사 엘레바와 파트너사인 항서제약을 통해 리보세라닙+캄렐리주맙 병용요법에 대한 약물 유효성과 안정성 등을 증명했다. 현재 HLB는 해당 병용요법에 대한 FDA 승인을 얻기 위해 막바지 서류 작업에 돌입한 상황이다.
업계 관계자는 “올해 ESMO에서 혁신 기술은 등장하지 않았지만 이전부터 큰 주목을 받던 약물들의 능력이 더욱 확대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했다”며 “기존 제한적 치료를 받을 수밖에 없던 암 환자들에게 새로운 희망이 생길 수 있다는 기대감도 엿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김동명 기자 simalo@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