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보트럭, 짧지만 강렬한 인상을 선물하다 [시승기]
||2024.09.06
||2024.09.06
2016년 5월. 볼보트럭의 고향인 스웨덴 예테보리에서 볼보트럭 FH 그리고 FMX와 원 없이 뛰논 적이 있다. 당시 시승은 매우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FH 트랙터는 꽁무니에 무려 300톤이 넘는 트레일러를 달고도 12%에 달하는 경사로를 아무렇지 않게 올랐고 FMX는 개척자처럼 숲이 우거지고 여기저기 패인 산길을 가뿐하게 달렸기 때문이다.
스웨덴에서의 기억이 어딘가 깊숙한 곳으로 밀려들어 갔을 때쯤 다시 볼보트럭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볼보트럭은 자신들의 신작을 경험해보라며 평택 PDI 센터로 기자들을 불러 모았다. 그곳에는 가장 최신작인 FH 에어로와 FE, FMX가 위풍당당한 자세로 서 있었다.
간단한 교육을 들은 후 바로 시승이 시작됐다. 가장 먼저 경험한 모델은 FE다. FE는 볼보트럭 라인업 중 콤팩트한 모델로 단거리 혹은 도심 운송에 최적화된 모델이다. 묵직한 도어를 열고 계단에 올라 시트에 앉았다. 바로 엔진을 깨우고 정해진 코스로 천천히 나아갔다.
적재함이 탑재되지 않는 터라 통통 튀는 느낌이 강했다. 하지만 시트에 적용된 에어 서스펜션 덕분에 불쾌한 느낌이 들지는 않았다. 엔트리급 모델임에도 불구하고 엔진의 진동과 소음이 매우 잘 억제됐다. 해당 모델은 볼보 다이내믹 스티어링(VDS) 시스템이 탑재되지 않아 스티어링 휠이 약간 묵직했지만 크게 불편함이 느껴질 정도는 아니었다. 일반 SUV와 비슷한 수준이다. 쭉 뻗은 직선 구간에서 가속페달을 깊게 밟자 변속기는 한 번의 충격 없이 기어를 바꿔 물었다.
FE를 경험한 후 옮겨 탄 모델은 FMX다. FMX는 볼보트럭 라인업 중 가장 강인한 인상을 가진 덤프다. 일반 라인업이 세단이라면 FMX는 지프 랭글러와 같은 오프로더다. 일단 생김새부터 남다르다. 앞범퍼 하단은 가파르게 깎아 접근각을 높였고 FMX를 위해 제작된 후방 에어 서스펜션을 적용해 300밀리미터(㎜)의 지상고를 확보했다. 또 그릴과 전면 윈드 실드 부분을 검은색으로 마무리해 강인한 이미지를 한층 강화했다.
기어를 물리고 가속페달을 밟아 육중한 체구를 서서히 움직였다. FMX 역시 엔진의 진동이나 소음이 실내로 파고들지 않았다. 무엇보다 i-시프트 변속기의 능력이 돋보였다. 빠르지는 않지만 충격 없이 기어를 바꿔 무는 게 인상적이었다. 커다란 스티어링 휠을 돌리는 일도 어렵지 않았다. 볼보 다이내믹 스티어링 시스템이 탑재돼 있어 손가락 하나로도 조작이 가능했다. 단언컨대 스티어링 휠 조작은 플래그십 세단보다 쉽다.
이번 시승의 주인공은 단연 FH 에어로다. 볼보트럭코리아가 내놓은 가장 신작이자 혁신적인 변화가 깃든 까닭이다. 눈에 보이는 변화는 디자인이다. 공기역학성능을 고려해 완성한 디자인은 기존과 다른 인상을 전달했다. 기존 FH 대비 240㎜ 길어졌으며 모서리를 유선형으로 다듬었다. 또 전면 윈드실드 아래쪽에 위치했던 아이언 마크는 그릴로 자리를 옮겼다. 이와 같은 디자인 변화를 통해 연료 효율성이 5%가량 높아졌다.
시승회에는 두 대의 FH 에어로가 준비됐다. 먼저 시승한 모델은 FH 에어로 트라이뎀 덤프다. 떨리는 마음으로 도어를 열고 실내에 들어서자 넓은 시야가 눈에 들어왔다. 인스트럭터의 간단한 설명을 들은 후 본격적인 시승에 나섰다. 시트포지션은 일반 승용차와 크게 다르지 않은 수준이라 운전의 부담감은 크지 않았다.
기어를 바꾸고 가속페달을 밟자 미끄러지듯 움직이기 시작했다. 앞서 경험한 FE와 FMX와는 확실히 다른 느낌이다. 마치 플래그십 세단을 타고 있는 착각이 들 정도로 움직임이 부드러웠다. 차체와 캡, 시트 등 3개의 에어 서스펜션을 탑재한 덕분에 노면의 충격을 거르는 능력이 매우 훌륭했다. 말랑한 승차감에 감탄할 겨를도 없이 가벼운 스티어링 휠 감각에 또 한 번 놀랐다. 큰 힘을 주지 않아도 부드럽게 스티어링 휠이 스르륵 돌아갔다.
FH 에어로에 처음 적용된 카메라 모니터링 시스템(CMS)의 사용성은 매우 높았다. 일반적인 미러에 익숙해져 있던 탓에 불편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기우였다. 외부 상황을 비추는 디스플레이가 A필러 양쪽에 설치된 덕분에 시선 이동이 크지 않았고 시인성도 높았다.
또 일반 미러 대비 넓은 시야 확보가 가능한 점은 분명 장점이었다. 특히 렌즈가 설치된 부분 위쪽으로는 비를 막을 수 있도록 살짝 돌출돼 있어 우천 시 빗물이 맺히는 걸 방지한다. 세심한 배려다. 이 밖에도 나이트-모드가 적용돼 야간 주행 시에도 주변 시야를 확보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시승한 모델은 트랙터 모델인 FH 에어로 글로브트로터다. 8년전 시승 당시에도 FH 글로브트로터가 가장 마음에 들었던 터라 더욱 기대가 컸다. 잠자고 있던 거대한 엔진을 깨우고 곧바로 시승 코스로 진입했다. 첫 느낌은 매우 강렬했다. 가속페달을 살짝만 건드렸을 뿐인데 묵직한 토크 덕분에 사뿐하게 움직였다. 과거 모델과 비교했을 때 확실한 차이가 느껴질 정도다.
속도를 높이자 i-시프트 듀얼클러치 변속기의 감각이 빛나기 시작했다. 6단까지는 일반 변속가와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7단부터는 엄청난 속도로 기어를 바꿔 나갔다. 일반 승용차에 적용된 듀얼 클러치 변속기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빨랐다. 물론 변속 충격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높은 차체를 가졌음에도 회전 시 불안한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다. 플래그십이라는 수식어가 딱 어울리는 움직임이다.
볼보트럭의 신작 FH 에어로와 콤팩트한 FE, 전천후 덤프 FMX는 상당히 매력적이었다. 부드러운 엔진 회전 질감을 비롯해 승용차 못지않은 승차감과 빼곡한 안전 편의 사양, 매끈한 디자인은 상용차가 나아갈 방향성을 제시하는 듯했다.
허인학 기자 ih.heo@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