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환돼도 포기란 없다”…되돌아온 기술로 ‘반전’ 노리는 K-바이오
||2024.09.01
||2024.09.01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반환된 기술을 재이전하거나 자체 개발을 통해 새로운 가능성에 도전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통상 기술이전된 신약 후보물질이 반환되면 실패로 간주될 수 있으나, 기존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추가 실험해 약물 능력을 확장시켜 전화위복의 기회를 노린다는 전략이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최근 한미약품이 국내 바이오벤처 노보메디슨에 브루톤티로신키나제(BTK) 억제제 ‘포셀티닙(Poseltinib)’을 기술이전한 것으로 확인됐다.
포셀티닙은 한미약품이 2010년 최초 개발한 신약 후보물질로, 2015년 일라이릴리에 최대 6억9000만 달러(9100억원)에 기술수출한 BTK 억제제다. BTK 억제제는 B세포 및 골수 세포의 기능을 조절하는 BTK 효소의 단백질 결합 부위에 가역적으로 결합해 촉매 반응을 저해하는 약물이다.
당시 일라이릴리는 류마티스 관절염 환자를 대상으로 포셀티닙 임상 2상을 진행했지만 유효성을 발견하지 못하고 임상을 중단한 뒤 2019년 한미약품에 기술이전 권리를 반환했다.
이후 한미약품은 2021년 지놈오피니언(現 노보메디슨)과 포셀티닙 공동개발 계약을 체결, 현재 CD3xCD20 이중항체인 ‘글로피타맙’, 면역조절제 ‘레날리도마이드’를 조합한 3제 병용요법을 통해 재발 및 불응 미만성 거대 B세포 림프종(DLBCL) 환자 대상의 연구자 주도 임상 2상을 진행하고 있다.
포셀티닙+글로피타맙+레날리도마이드 3제 병용요법 임상 중간 결과도 긍정적이다. 올해 6월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린 유럽혈액학학회(EHA)에서 발표된 데이터를 보면, 임상 시작 후 반응이 평가된 환자 14명 중 유효성 평가 기준인 객관적 반응(OR)을 충족한 비율이 79%에 이르고, 초기 데이터임에도 불구하고 36% 환자는 암 세포가 사라진 완전관해(CR)가 관찰됐다. 안전성을 평가한 코호트도 이상반응이 발견되지 않았다.
이와 같은 협력에 힘입어 한미약품은 올해 노보메디슨과 포셀티닙의 기술수출 계약을 체결해 5년 만에 재 기술이전을 이뤄냈다. 총 계약규모와 계약금은 양사 합의 하에 비공개다.
특히 한미약품은 2015년 글로벌 제약사 ‘사노피’에 기술이전했으나 2020년 반환받은 당뇨병 치료제 ‘에페글레나타이드’를 한국인 맞춤형 비만약으로 자체개발하고 있다.
회사는 2021년 미국 당뇨병학회(ADA)에서 에페그레나타이드의 잠재력을 확인, 한국인 맞춤 글루카곤유사펩타이드-1(GLP-1)로 개발 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려 임상을 추진하고 있다.
한미약품은 2015년 얀센에 기술이전된 비만·당뇨 후보물질 ‘에피노페그듀타이드’를 2020년 대사이상관련지방간염(MASH)으로 적응증을 바꿔 글로벌 제약사 머크에 다시 기술이전하는 성과도 달성한 바 있다.
지씨셀 이달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GCC2005’의 임상1상 시험계획(IND)을 승인받으며 CAR-NK(키메릭 항원수용체-자연살해) 세포치료제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GCC2005는 제대혈 유래 NK세포로 제작된 동종유래 세포치료제로, T세포 림프종에서 높게 발현되는 CD5 마커를 표적으로 한다. CD5는 T세포 림프종의 다수 아형에서 높은 발현을 보여 다양한 아형 림프종을 위한 치료 옵션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지씨셀의 CAR-NK 치료제 개발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21년 지씨셀은 미국 관계사 아티바 바이오테라퓨틱스, 글로벌 제약사 MSD와 CAR-NK 치료제 3종에 대한 공동개발 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당시 아티바가 MSD와 체결한 계약으로 총 2조5800억원 규모의 기술수출이었다.
그러나 MSD가 내부 의사결정에 따라 올해 6월 아티바에 계약 해지를 통보며 지씨셀의 연구용약 계약도 해지됐다. 이후 지씨셀은 아티바와 CAR-NK 플랫폼 연구를 지속하겠다고 선언, 현재 ‘AB-201’ 개발을 추진 중이다.
AB-201은 HER2 과발현 유방암과 위암 등 고형암을 표적한다. 이미 아티바는 2022년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AB-201의 1/2상 IND를 승인 받았으며, 지씨셀은 지난해 12월 식약처와 호주 인체연구윤리위원회(HREC)로부터 AB-201의 1상 IND를 승인받았다.
지씨셀은 동종 세포 유래 방식인 CAR-NK를 통해 기존 CAR-T 치료제의 부작용 측면을 보완하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CAR-T는 신경독성과 관련된 인터루킨과 같은 사이토카인을 유도하지만, CAR-NK는 사이토카인 방출 증후군(CRS), 신경독성 등의 부작용 발생 가능성이 낮은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전문가들은 지씨셀이 이달 규제당국으로부터 승인받은 약물과 아티바와 함께 개발 중인 신약 후보물질은 다르지만, 글로벌 기업과의 공동개발 연구를 통해 얻어낸 임상 노하우와 새롭게 알게 된 약물 효능을 바탕으로 CAR-NK 치료제 개발 성공 가능성을 끌어올리고 있다고 분석한다.
업계 관계자는 “기술반환은 약물에 대한 효능부족을 뜻하기 보단 라이선스 아웃 주체 기업의 전략 목표에 부합하지 않아 반환하는 경우도 상당하다”며 “기술을 되돌려 받은 국내 기업은 그간 쌓아온 임상 데이터를 통해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고, 또 다른 공동개발 파트너를 찾는 등 더 좋은 기회로 연결될 수 있기 때문에 기술반환이 그저 부정적인 요인이라고 판단하긴 힘들다”고 말했다.
김동명 기자 simalo@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