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진출 렉라자로 위상 올라간 韓바이오…K-블록버스터 도전 지속되나
||2024.08.27
||2024.08.27
국내 제약사가 기술수출한 항암신약이 최초로 미국의 문턱을 넘은 가운데 세계 최대 시장에 진출해 차기 블록버스터(연매출 1조 의약품)를 꿈꾸는 국산 의약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글로벌 기업들이 주도하던 시장에 국산 의약품이 순차적으로 모습을 드러내며 국내 제약바이오 산업에 위상이 높아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는 한편, 일각에서는 미국 시장 진출에 성공하는 기업들이 늘어날수록 산업 전반에 활력을 불어넣을 것이란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최근 유한양행이 개발한 비소세폐암 치료제 ‘렉라자(성분명 레이저티닙)’의 미국 식품의약국(FDA) 허가가 이뤄지면서 미국 시장 문턱을 넘을 차기 신약이 각광받고 있다.
우선 이번 FDA 통과 신약은 렉라자와 존슨앤존슨(J&J)이 개발한 폐암 치료제 ‘리브리반트(성분명 아미반타맙)’ 정맥주사(IV) 제형의 병용요법이다.
해당 병용요법은 FDA로부터 20일 상피세포성장인자수용체(EGFR) 엑손 19 결실 또는 엑손 21 L858R 치환 변이가 확인된 국소 진행성 또는 전이성 비소세포폐암(NSCLC) 성인 환자 1차 치료제로 승인받았다. 이는 국내 제약사가 항암 분야에서 후보 물질을 글로벌 빅파마에 기술 이전해 FDA 승인으로 연결시킨 첫 사례다.
렉라자는 국내 바이오 기업 오스코텍이 개발해 2015년 유한양행에 기술 수출한 항암제다. 렉라자는 뇌 혈관 장벽(BBB)을 통과할 수 있어 뇌 전이가 발생한 폐암 환자에 우수한 효능과 뛰어난 내약성을 보이며, 표적에 대한 선택성 역시 높아 부작용이 낮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로이터와 피어스파마 등 해외 언론들은 렉라자+리브리반트 병용요법이 폐암 시장을 지배하고 있는 아스트라제네카의 ‘타그리소(성분명 오시머티닙)’와 진정한 승부가 펼쳐질 것이라고 보도했다.
2023년 기준 타그리소의 전 세계 매출은 58억달러(7조7000억원)이었다. 존슨앤존슨도 이번 허가로 향후 최대 50억달러(6조6000억원) 이상의 매출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유한양행은 렉라자의 한국 판권만 갖고 있지만 FDA 허가로 인해 얀센으로부터 800억원 규모의 마일스톤(단계별 기술료)을 수령하게 되며 글로벌 판매에 따른 별도 로열티를 통해 막대한 수익을 얻을 전망이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는 “렉라자의 이번 FDA 승인을 계기로 국내 제약바이오기업이 개발한 국산 신약의 위상이 제고됐다”며 “이를 바탕으로 미국과 유럽 등 글로벌 시장 진출이 한층 가속화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평가했다.
이에 FDA 허가 가능성이 있는 차기 국산 신약에 대한 궁금증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가장 먼저 예상되는 신약은 HLB의 간암 치료제 ‘리보세라닙’이다.
올해 초 FDA로부터 보안요구서한(CRL)을 받으며 미국 입성이 한 차례 연기된 리보세라닙은 오는 9~10월에 재승인 서류를 제출한다. 리보세라닙은 혈관 내피 성장인자 수용체(VEGFR-2)를 억제해 암의 성장에 필수적인 산소와 영양분의 공급을 차단, 암을 효과적으로 사멸하는 TKI 계열 경구용 약물이다.
아직까지 신생혈관억제 기전의 TKI 항암제와 면역항암제의 병용요법으로 허가된 간암 1차 치료제가 없기 때문에 신규 시장 확보도 가능하다. 이번에 신청된 신약도 렉라자와 같이 단독요법이 아닌 리보세라닙과 중국 항서제약의 ‘캄렐리주맙’의 병용요법이다.
회사는 중국 항서제약의 화학·제조·품질관리(CMC) 문제로 CRL을 부여받은 만큼, 약물에 대한 큰 오류가 없는 상황에서 해당 문제만 개선하면 FDA 허가를 무난하게 획득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을 드러내고 있다.
국내 칼륨경쟁적 위산분비억제제(P-CAB) 시장의 왕좌에 앉아있는 HK이노엔 ‘케이캡(성분명 테고프라잔)’도 미국 진출을 노리고 있다. 케이캡은 소화성 궤양용제 시장에서 기존 프로톤 펌프 저해제(PPI) 약물을 빠르게 대체하고 있는 P-CAB 계열 신약이다.
HK이노엔은 미국에서 연내 비미란성 식도염 임상 3상을 마치고, 내년 상반기 중 미란성 식도염 임상 3상 종료를 예상하고 있다. 회사는 뚜렷한 계획을 공개하진 않았지만, 최종 3상 임상 결과가 나오는 즉시 FDA 허가 신청을 진행할 가능성이 높다.
케이캡은 올해 국내 원외처방액 2000억원 달성을 무난히 바라볼 만큼 한국 시장 내 지위를 공고히 하는 동시에, 미국 진출로 외연확장을 노리겠다는 전략이다. HK이노엔이 예상하는 미국 내 케이캡 가치는 3550억원 수준으로, 현지 경쟁 제품들의 성장세가 뚜렷해 FDA 허가 획득 시 빠른 속도로 수익 증대가 예상되고 있다.
코오롱티슈진이 개발한 신장유래세포 기반의 골관절염 세포유전자치료제 ‘TG-C(한국 출시명 인보사케이주)’도 미국 입성을 위한 막바지 준비가 한창이다.
TG-C는 동종연골유래연골세포인 1액과, 방사선 조사한 TGF-β1(염증억제 및 연골성분 생성 촉진인자) 유전자 도입 형질전환 세포로 이뤄진 2액을 3대 1 비율로 혼합해 무릎의 관절강 내 주사(intra-articular injection)하는 의약품이다.
코오롱티슈진은 지난 7월 미국 시민 6800여명을 대상으로 3상 투약을 마무리한 상황으로, 2026년 7월까지 2년간 추적 관찰을 거친 뒤 FDA 허가 절차를 진행할 방침이다.
노문종 코오롱티슈진 대표는 지난달 열린 기업설명회 자리에서 “과거 한국 임상 3상에서 TG-C가 무릎 골관절염 진행을 지연시키는 경향성이 확인됐다”며 “미국 임상 2상 결과가 한국 임상 3상에서 재현됐던 만큼, 미 임상 3상에서도 재현될 가능성이 높다”고 확신하기도 했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기업들의 글로벌 진출이 가속화되면서 세계 최대 의약품 시장인 미국 입성을 노리기 기업이 다양해지고 있다”며 “이번 렉라자의 성공으로 국내 기업의 성장가능성을 다시 한 번 확인한 만큼, 더욱 다양한 국산 신약이 글로벌 수준의 성공을 위한 행보를 이어갔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동명 기자 simalo@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