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P 확장 추적하는 유통 인프라 ‘스토리’, IP 생태계 변혁 노린다
||2024.08.23
||2024.08.23
“IP는 세계 최대의 자산군입니다. 모든 창작물이 곧 IP입니다. AI 모델도, 가수 목소리도, 사람들 사진도, 인터넷 밈도 IP입니다. 창작자는 눈부시게 발전한 기술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버튼 하나 누르면 무료로 전 세계에 자신의 창작물을 배포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하지만 디지털 르네상스, 콘텐츠 황금기가 도래하진 않았습니다. AI로 균열이 생기며 사람들이 콘텐츠를 소비해도 원작자(창작자)는 수익을 내지 못해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22일 제이슨 자오 프로그래머블IP랩스 공동 창업자 겸 최고프로토콜책임자(CPO)는 서울 중구 을지로 페럼타워에서 열린 ‘스토리 기자간담회’에서 이 같이 밝혔다. 프로그래머블IP랩스는 북미 웹소설 플랫폼 ‘래디쉬’ 창업자 이승윤 대표가 제이슨 자오 CPO와 2022년 설립했다. IP와 생성형 AI 관련 생태계 ‘스토리’는 프로그래머블IP랩스가 개발했다.
스토리는 창작자가 자신의 IP를 보호하고 꾸준히 수익을 창출할 수 있도록 돕는 플랫폼이다. 생성형 AI가 발전하면서 수많은 산출물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이 AI가 학습하는 데이터의 지식재산권(IP) 원작자 권리 침해가 빈번하게 발생하는 문제를 해소하기 위함이다. 스토리는 창작자의 IP를 토큰화해 블록체인에 저장하고 이를 재창작·판매·배포하는 과정을 추적한다.
블룸버그 등 외신에 따르면 한국 시각으로 22일 새벽 프로그래머블IP랩스는 기업가치 3조원을 인정받고 8000만달러(약 1067억원)의 투자를 유치하기도 했다. 이번 투자는 글로벌 벤처투자사(VC) 앤드리슨 호로비츠가 주도했으며 영국 브레반 하워드, 삼성 해외투자법인 삼성넥스트, 방시혁 하이브 의장, 정경인 더블랙레이블 CEO 등이 참여했다.
스토리는 창의력 증명(Proof-of-Creativity)로 불리는 프로토콜을 통해 권리를 보호하고 자동화된 저작물 사용료 지급 등의 규칙을 정의할 수 있게 한다. 설정할 수 있는 IP는 캐릭터, 스토리, 텍스트, 오디오, 비디오 등 다양하다.
제이슨 자오 CPO는 스토리 API를 활용해 솔루션을 구축할 경우 창작자가 모든 IP 사용과 재창작, 수익 부분을 관리할 수 있게 된다고 설명한다. IP 활용 경로도 소프트웨어를 통해 추적 가능하다. 저작권 관리를 위해 변호사를 선임하지 않아도 스토리가 이를 돕는 식이다.
그는 만약 스토리가 일찍 창업했고 뉴욕타임스 같은 언론사가 스토리에 기사 IP를 등록해 관리했다면 오픈AI의 생성형 AI 챗GPT가 뉴욕타임스 기사를 무단 학습했는지 알 수 있었을 것으로 봤다.
그는 “스토리는 IP 활용 경로나 불법복제·불법공유를 단순 추적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인터넷 시대에 맞춘 라이선스 계약 과정을 매끄럽게 하는 역할을 한다”며 “스토리가 직접 알고리즘이나 프로그램을 만드는 건 아니지만 여러 개발자 중에 스토리 프로토콜을 활용해 스토리에 등록된 IP 무단 사용을 감지하고 추적하는 도구(툴)를 개발하도록 밑그림을 그리려 한다”고 말했다.
스토리의 사업구조가 세계 각국의 법체계 영향을 받는다는 점은 장점이자 위험요인으로 분석된다. 아직 AI와 지식재산권(IP) 관련 법체계가 마련된 곳이 적어서다. 스토리가 세계 각국의 AI IP 관련 법 제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셈이다.
실제 AI 관련 법이 있는 국가도 손에 꼽힌다. 올해 8월 들어 유럽연합(EU)이 세계 최초로 AI 법을 시행했다. 미국은 캘리포니아주에서 AI 관련 법이 하원을 통과했다. 한국은 AI 기본법 제정을 추진하는 단계다. 아직 관련 법·제도가 마련되지 않은 가운데 스토리가 AI 시대 IP 비즈니스 관련 사업모델을 확보해 기술표준화를 추진하면 스토리의 사업모델과 기술이 세계 각국의 AI IP 관련 법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말이다.
제이슨 자오 CPO는 “스토리 블록체인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실제 이용자는 전혀 몰라도 꾸준히 지속가능하게 작동하도록 만들고 있다”며 “좋아하는 앱이나 웹사이트가 구글 클라우드를 쓰는지 아마존 클라우드를 쓰는지 이용자는 몰라도 되는 것처럼 창작자는 자신의 IP가 어떤 가치를 창출하고 있는지를 알게 되고 이런 가치 창출을 통한 법정화폐로 보상받는 구조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날 스토리 같은 IP 인프라가 필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AI 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생겨난 부작용으로 인해 현재 ‘공유지의 비극’이 일어나고 있다는 이유다. 공유지의 비극은 초원에 자란 풀을 많은 소가 뜯어먹다 보면 결국 황폐화 된다는 것을 말한다. 개방된 자원을 개인 이익을 위해 사용하면 자원이 결국 고갈된다는 경제 이론이다.
챗GPT 같은 생성형 AI는 인터넷에 공개된 데이터를 학습한다. 이런 데이터는 데이터를 생산한 창작자의 IP를 기반으로 한다. 생성형 AI 개발사는 데이터를 학습하는 대가를 지급하지 않는다. 공개된 데이터였기 때문이다. 개인이 다른 이의 IP를 소비할 때도 불법복제·불법유통 등 IP 침해가 빈번히 일어난다. 이 역시 창작자의 수익 악화로 이어진다.
결국 풀(데이터)을 뜯는 소(AI)는 많아지는데 풀이 자랄 수 있도록 씨를 뿌리는 사람(IP 창작자)은 줄어든다. 창작자가 창작 활동으로 수익이 나지 않으니 창작을 계속할 수 없게 되는 셈이다. 이는 결국 AI가 학습할 데이터의 양과 품질이 모두 하락하는 결과를 낳는다. AI로 인한 공유지의 비극이 일어나는 원리다.
제이슨 자오 CPO는 “수백명의 독자를 보유한 여행 블로거를 가정했을 때 이전에는 방문자 수를 기반으로 블로그 등 플랫폼이 창작자 수익을 보전해줬다면 이제는 퍼플렉시티 같은 AI가 여행 관련 질문을 받아 블로그 글 등을 기반으로 답변을 해준다”며 “그렇게 직접 블로그를 찾아보지 않고 AI에게 질문하는 이가 늘면 블로그 글을 열심히 쓸 이유가 줄어들고 블로그 글도 줄어들면서 풀이 자랄 수 있는 씨앗이 줄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스토리의 블록체인 솔루션은 AI와 인터넷이 상호작용하는 방법을 올바르게 이끌어가려고 한다”며 “IP 관련 법체계가 인쇄술 발명 이후 달라졌듯 인터넷과 AI 시대를 맞은 지금도 달라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변인호 기자 jubar@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