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원했던 캐스퍼, 캐스퍼 일렉트릭 [시승기]
||2024.08.22
||2024.08.22
매력을 느낀는 데 시간이 중요할까? 이 같은 물음에 확실한 답을 내릴 수 있다. 매력은 시간과 비례하지 않는다. 아무리 오랜 시간 함께 있어도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반면, 대화를 나누지 않아도 찰나의 시간에 매력을 느끼는 경우가 있다. 우리는 이를 ‘첫눈에 반했다’라고 표현한다.
자동차에도 이는 적용된다. 하루 종일, 며칠을 시승해도 매력이 느껴지지 않는 자동차가 더러 존재한다. 반대로 찰나의 순간에 매력이 느껴지는 자동차가 있다. 캐스퍼 일렉트릭이 딱 그렇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캐스퍼 일렉트릭의 매력은 진하게 느껴졌다. 마치 이성에게 첫눈에 반하는 것처럼.
픽셀 그래픽이 마치 한 몸처럼 느껴지는 디자인
캐스퍼는 개성 넘치는 인상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최초의 경형 SUV이자 톡톡 튀는 젊은 디자인이 많은 이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다. 캐스퍼 일렉트릭 역시 그렇다. 아니, 개인적으로는 더욱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얼굴과 스타일에 딱 맞는 화장법을 찾은 느낌이다.
캐스퍼 특유의 원형 헤드램프는 테두리를 살짝 다듬었으며 구멍이 숭숭 뚫려 있던 그릴은 유광 아크릴 라디에이터 그릴로 꽉 막아놨다. 특히 픽셀 그래픽을 적용한 프론트 센터 턴 시그널 램프와 헤드램프가 시선을 잡아챘다. 아이오닉 5를 통해 처음 선보인 이 디자인은 캐스퍼와 절묘하게 맞아 떨어졌다.
측면은 기존 캐스퍼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근육질의 펜더 라인과 캐릭터 라인, 휠 하우스와 하단을 감싸고 있는 플라스틱 클래딩은 여전히 자리하고 있다. 물론 다른 점도 있다. 바로 갈아 신은 휠의 디자인이다. 캐스퍼 일렉트릭의 17인치 휠은 네모 형태의 디자인 요소로 완성돼 픽셀 디자인과 조화를 이룬다. 또 2열 도어 핸들에 캐릭터를 더해 귀여운 매력을 살렸다.
후면 역시 픽셀 그래픽으로 완성했다. 보조 제동등과 테일램프는 수많은 픽셀이 가지런히 나열된 모습이다. 범퍼에 위치한 방향지시등 역시 픽셀이다. 전체적으로 픽셀 그래픽과의 조화가 좋다. 마치 캐스퍼 일렉트릭을 위해 해당 디자인 요소를 개발한 것처럼 느껴진다. 내연기관 캐스퍼 오너들은 듣기 불편하겠지만, 디자인적인 부분에서는 캐스퍼 일렉트릭이 한 수 위다.
경차 맞아? 호사스러운 기능과 널찍한 실내
캐스퍼 일렉트릭은 우리가 알고 있던 기존 ‘경차’의 인식을 완전히 바꿔 놓기 충분하다. 한국인들의 취향을 저격한 구성과 편의 사양은 그저 그런 수입차와 견줘도 손색이 없다. 한 단계 위급에서나 누릴법한 기능들은 운전자와 탑승자의 쾌적한 주행을 돕는다. 호사스럽기 그지없다고 표현하는 게 정확할 정도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스티어링 휠이다. 내연기관 캐스퍼와 달리 3 스포크 디자인을 적용하고 인터랙티브 픽셀 라이트를 적용해 주행 모드에 따라 빛을 달리하는 등 운전자와 교감한다. 천연 가죽의 질감도 높아 손에 쥐는 맛이 좋다.
또 10.25인치의 계기판과 10.25인치 내비게이션은 다양한 정보를 표시하고 시인성이 높다. 특히 내비게이션 화면에는 전기차 전용 기능이 적용돼 있어 전기차 주행에 필수적인 정보를 제공한다.
캐스퍼 일렉트릭은 공간 활용성의 극치를 보여준다. 현대차의 재치 덕분에 작지만 작지 않은 차를 타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대표적인 것이 센터페시아에 추가된 수납공간이다. 내연기관 캐스퍼의 경우 변속기 레버가 센터페시아에 솟아오른 형태다. 반면 캐스퍼 일렉트릭은 스티어링 휠 뒤쪽으로 변속기 배치한 전자식 변속 칼럼을 적용했다. 덕분에 센터페시아 부피가 줄었고 센터페시아 하단에 스마트폰 무선 충전 기능을 더한 수납공간을 마련했다.
실내 공간은 전체적으로 매우 여유롭다. 비결은 기존 캐스퍼 대비 커진 크기다. 현대차는 캐스퍼 일렉트릭의 길이를 기존 캐스퍼 대비 길이를 230밀리미터(㎜) 늘리고 너비도 15㎜ 키웠다. 휠베이스는 무려 180㎜나 늘었다.
사실 경차 혜택을 포기하면서까지 크기를 늘린 이유가 있다. 바로 큰 용량의 배터리를 탑재하기 위해서다. 물론 기존 캐스퍼와 같은 차체에 배터리를 탑재할 수도 있지만, 만약 덩치를 키우지 않았다면 주행거리에서 큰 손해를 봤을 것이다. 공간에 대한 부족함도 여전히 느껴졌을 터다.
현대차 선택은 옳았다. 기존 경차에서 해결할 수 없는 숙제인 공간에 대한 갈증을 완벽히 해소했기 때문이다. 캐스퍼 일렉트릭은 1열 시트를 편하게 조절해도 뒷좌석 공간이 전혀 부족하지 않다. 특히 2열 시트에 슬라이딩과 리클라이닝 기능을 더해 상황에 따라 시트를 옮길 수도 있다. 적재 공간도 늘었다. 내연기관 캐스퍼보다 47리터(ℓ) 늘어난 280ℓ에 달하고 뒷좌석을 앞으로 밀면 최대 351ℓ까지 확보할 수 있다.
빠른 달리기 실력 갖춘 경차
일반적으로 ‘경차’는 작은 심장을 품고 적은 힘을 내기 마련이다. 성능보다는 효율성에 초점을 맞춘 까닭이다. 캐스퍼 일렉트릭은 기존 경차의 공식을 완전히 무시한다. 힘이 부족하지도 그렇다고 효율성이 떨어지지도 않는다. 흔히 말하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셈이다.
캐스퍼 일렉트릭은 최고출력 85.4킬로와트(kW)의 힘으로 바퀴를 굴린다. 115마력에 달하는 힘이다. 큰 감흥이 느껴지지 않는 수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전기모터의 특성을 적극 활용해 순발력이나 가속감이 뛰어나다. 지금껏 경차에서는 느껴보지 못한 경쾌함이다. 특히 힘을 부드럽게 쏟아내는 특성 덕분에 기분 좋은 가속이 가능하다.
전기차 특화 기능도 쾌적한 주행 환경을 완성하는 요소다. 이를테면 스마트 회생 시스템이다. 이 시스템은 전방 교통 흐름과 운전자의 감속 패턴 등을 바탕으로 회생제동량을 자동으로 조절한다. 실제로 별 다른 회생제동 단계를 조절하지 않아도 마음속을 훤히 들여다보는 것처럼 속도를 줄이고 멈췄다.
주행 안정성 또한 좋다. 무거운 배터리가 차체 바닥에 깔려 있는 구조 덕분이다. 무게 중심이 낮게 설정되어 있기 때문에 과격하게 몰아도 차체가 쉽게 흔들리거나 불안한 기색을 보이지 않는다. 승차감은 가히 최고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기차의 특성을 고려한 서스펜션 설계와 배터리의 무게가 차체를 눌러 차체가 통통 튀지 않는다. 되려 고급 세단의 묵직한 승차감이 느껴질 정도다.
정숙성 역시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일반적으로 전기차의 경우 노면 소음과 풍절음, 떨림 등이 더욱 크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특히 경차라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캐스퍼 일렉트릭은 그렇지 않다. 일상 영역은 물론 그 이상으로 달리는 상황에서도 노면 소음과 풍절음은 캐스퍼 일렉트릭이 쌓은 견고한 벽을 뚫지 못했다.
캐스퍼 일렉트릭은 경차임에도 불구하고 넉넉한 공간, 빼곡하게 채운 편의장비까지 나무랄 곳이 전혀 없다. 굳이 큰 차, 굳이 내연기관을 고수하지 않는다면 캐스퍼 일렉트릭은 훌륭한 선택지다. 캐스퍼 일렉트릭과 함께한 3시간은 시간의 개념을 무너뜨린 것처럼 많은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확신했다. 캐스퍼 일렉트릭은 우리가 원했던 캐스퍼라는 것을.
허인학 기자 ih.heo@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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