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추세된 플랫폼 책임 강화론
||2024.08.19
||2024.08.19
세계 각국에서 온라인 플랫폼이 더 많은 책임을 져야 한다는 규제 움직임이 강해지고 있다. 규제 대상으로 거론되는 건 주로 빅테크 플랫폼과 SNS, 뉴스 유통 플랫폼 등 일반 소비자와 밀접한 분야다. 우리나라에서는 여야를 가리지 않고 플랫폼 책임 강화가 필요하다는 데 목소리를 높이는 가운데 티메프 사태 이후 이 같은 움직임은 더욱 커진 모양새다.
플랫폼 규제는 세계적인 움직임
17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티메프 정산지연 사태 이후 플랫폼 규제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특히 결제 대금 예치(에스크로) 의무화, 정산 기한 단축 등 규제를 비롯해 청소년 SNS·스마트폰 과의존 예방, 국내외 기업 간 망 사용료 차별 문제 등이 플랫폼 관련 주요 현안으로 꼽힌다.
규제 방법과 규제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여야는 의견을 함께하고 있다. 티메프 사태 관련 최근 발의된 법안도 송언석 국민의힘 의원안, 김남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안 등 여야 양쪽에서 발의됐다.
가짜뉴스 관련 포털 서비스 규제도 여야가 함께 목소리를 내왔다. 국민의힘은 현재 포털 불공정 개혁 TF를 구성해 세미나와 토론회를 진행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도 2021년 미디어혁신 특별위원회를 통해 포털의 뉴스 추천 기능 폐지, 알고리즘 공개 등을 담은 법안 입법을 추진했다.
해외 주요국도 이 같은 기조를 보인다. 미국 정부가 최근 구글의 검색 시장 반독점 소송에서 승소한 뒤 구글 기업 분할이 이뤄질 수도 있다는 말이 나온다. 구글의 안드로이드 운영체제(OS)와 인터넷 브라우저 ‘크롬’ 부문을 분리하는 식이다.
미국은 망 사용료도 바이든 행정부의 망 중립성 규제를 법원에서 임시 중단시켰다. 이로 인해 통신망사업자(ISP)가 구글 등 빅테크에 망 사용료를 요구할 수 있게 됐다.
유럽(EU)은 이미 구글, 애플, 틱톡, 메타 등 주요 빅테크를 모두 강하게 규제하고 있다. 디지털시장법(DMA)과 디지털서비스법(DSA)이 빅테크의 자사 제품·서비스 우대를 금지하고 허위·불법 콘텐츠가 자사 플랫폼에 유통되지 않도록 관리감독 의무를 부여한다.
이를 위반하면 유럽 시장에서 퇴출되거나 전 세계 매출의 일정 비율을 내야 한다. EU는 망 사용료도 곧 도입할 기세다. EU는 기가비트연결법(GIA)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GIA는 글로벌 빅테크의 망 투자 비용 분담 의무를 규정한다.
플랫폼의 책임 없는 수익 창출
최근 사이버렉카 문제가 불거지면서 구글 유튜브 등 플랫폼의 사회적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유튜브는 사이버렉카를 방치해도 꾸준한 광고수익을 낼 수 있다. 자극적인 콘텐츠만큼 수익을 빠르게 많이 창출할 수 있는 콘텐츠도 없다.
메타도 유명인 사칭 광고로 세계적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국내에선 올해 3월 ‘유명인 사칭 온라인 피싱 범죄 해결을 위한 모임’이 발족해 메타를 규탄했다.
4월에는 일본의 사칭 광고 피해자들이 메타 일본법인에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일본 현지 언론들이 유명인 사칭 투자 관련 허위 광고 중 99%가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 메타의 플랫폼에서 발생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또 로이터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8월에는 폴란드의 부호인 라팔 브르조스카 인포스트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가 메타를 고소할 계획이다. 사칭 광고 때문이다.
메타도 구글과 상황이 비슷하다. 사칭 광고로 인한 피해자 발생 여부는 메타 SNS 플랫폼 이용자 수 및 메타의 광고 수익과 연결되지 않는다. 구글과 메타 같은 빅테크는 정부에 잘 협조하는 것도 아니다. 수사당국의 협조 요청도 대부분 거절해 왔다. 국내 기업과 다른 점이다.
세계 각국에서 메타에 사칭 등 허위 광고 방지를 주문하는 것도 별다른 효과가 없다. 메타는 국내 사칭 광고 문제에 관해 4월 5일 추가 탐지 장치를 구축하고 사용자 인식 개선 캠페인을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여전히 사칭 광고가 나온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이찬진 한글과컴퓨터 창립자는 8월 10일 자신의 SNS를 통해 “페이스북은 여전히 일반 게시물보다 광고가 많고 쿠팡 자동 연결 페이지가 범람하며 유명인 사칭 광고가 계속 나온다”며 “페이스북이 고쳤다고 하는데 저는 페이스북도 스레드도 아무것도 달라지거나 나아진 것이 없다”고 비판했다.
역차별은 해소해야
중요한 건 역차별 문제다. 국내 기업만 규제를 적용받고 국내 기업보다 몸집이 큰 글로벌 빅테크는 규제를 따르지 않는 경우가 여전히 많기 때문이다. 망 사용료가 대표적인 역차별 규제다. 국내에서 가장 많은 트래픽을 만드는 ‘유튜브’ 모회사 구글은 망 사용료를 내지 않는다.
실제 구글은 2022년 대한민국 국회에서 망 사용료 의무화법 제정을 추진하자 유튜버를 인질 삼아 콘텐츠 창작자가 피해를 볼 수도 있다며 여론전을 펼치기도 했다. 구글은 2022년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 당시 유튜버를 인질로 국회를 협박했다는 비판도 받았다.
글로벌 빅테크는 네이버, 카카오 등 국내 기업보다 법인세도 덜 낸다. 지난해 구글코리아가 낸 법인세는 네이버 법인세 4963억원의 3%쯤인 155억원뿐이다. 7월 기준 국내 월간 활성 이용자 수(MAU)가 가장 높은 앱은 유튜브다. 가장 많은 이용자와 트래픽을 바탕으로 많은 수익을 내면서도 책임지는 건 없는 셈이다. 국내 플랫폼 기업과 정반대 상황인 셈이다. 문제는 이런 글로벌 기업을 겨냥한 규제가 국내 기업에만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국내 플랫폼 기업은 각종 규제와 압력에 저항하기 어렵다. 알리, 테무 등 중국 이커머스 업체들은 이미 규제 사각지대에서 시장 영향력을 키웠다는 평을 받는다. 국내 플랫폼 판매자들은 해외직구 형태가 아니라 인증비용을 내고 각종 국가인증을 받아야 하지만 중국 플랫폼은 해외 직구 형태라서 부가세, 관세, 인증비 없이 물품을 들여 온다는 것이다.
이대호 성균관대학교 글로벌융합학부 교수는 8월 12일 ‘혁신 생태계 성장과 보호를 위한 플랫폼 정책 방향’ 토론회에서 “국내 플랫폼 사업자는 해외 사업자와 경쟁하고 있어 플랫폼 정책은 국내외 모든 플랫폼 사업자가 적용 대상이어야 한다”며 “만약 모든 사업자에 동일한 정책을 적용하지 못한다면 최소한의 규제를 적용해야 한다”고 밝혔다.
변인호 기자 jubar@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