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 대명사 ‘윈텔’ 조합 벗어나보니 [권용만의 긱랩]
||2024.08.14
||2024.08.14
1981년 IBM PC의 등장 이후 지금까지 40년 넘게 PC 생태계의 대표 조합은 대표 운영체제인 ‘윈도(Windows)’와 프로세서 제조사 ‘인텔(Intel)’을 합친 ‘윈텔(Wintel)’로 표현돼 왔다. 물론 기술적으로 파고 들어가면 좀 더 북잡하게 나뉘어지지만, 이 ‘윈텔’ 조합은 현재까지 ‘개인용 컴퓨터’ 시장에서 절대적이라고까지 표현할 수 있을 큰 영향력을 가진 조합이다. PC 시장에서 주목할 만한 변화 또한 결국은 이 ‘윈텔’이 움직일 때 나오는 경우가 많다.
PC를 제법 오래 사용해 온 사용자라 해도 이 ‘윈텔’ 조합을 근본적으로 벗어나 본 사용자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본격적인 ‘윈텔’ 조합의 시작은 1990년대 초반부터였고, ‘윈도 XP’로 상징되는 2000년대 x86 프로세서와 윈도를 사용한 PC의 시장 영향력은 가히 절대적이라 할 만 했다. 지금도 ‘윈텔’ 조합의 PC는 사용자들에 필요한 모든 것이 가능했고, 이 조합에서만 가능한 것들이 필요했기 때문에, 거의 모든 사용자들이 이 조합을 벗어날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복잡한 세상에서 모든 사람들의 취향을 하나의 기술 조합이 모두 만족시킬 수는 없다. 특히 모바일 시대를 지나 AI 시대로 진입하는 동안, 이 ‘윈텔’ 조합만을 고집해야 할 이유도 많이 사라졌고, 이는 ‘윈텔’ 조합의 당사자인 마이크로소프트와 인텔 또한 마찬가지인 모습이다. 이에 이제는 ‘윈도를 탑재한 x86 기반’ PC가 아닌 조합도 등장하고 있으며, 향후 ‘AI PC’ 시대로의 변화에서 기존의 ‘윈텔’ 이외의 조합에도 여러 가지 기회가 생길 것으로도 보인다.
PC 프로세서 대명사 ‘인텔’을 벗어난 ‘윈도’ 운영체제
지난 5월 마이크로소프트가 발표한 ‘코파일럿+ PC’는 ‘AI PC’ 시대로의 전환을 갓 시작한 PC 업계에 여러 모로 신선한 충격을 던졌다. 이 ‘코파일럿+ PC’의 핵심은 최신 ‘윈도’에 마이크로소프트의 AI 서비스 ‘코파일럿’ 기술과 서비스를 통합하고, 이를 디바이스 차원에서 직접 구동할 수 있는 기준을 정하는 것이며, 40TOPS(초당 40조회 연산) 이상 성능을 가진 신경망처리장치(NPU)를 갖추는 것이 핵심이었다. 이 기준은 기존에 인텔과 AMD가 선보인 프로세서에 탑재된 NPU 성능보다 수 배 높은 수준이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발표한 첫 ‘코파일럿+ PC’ 제품군은 인텔이나 AMD의 프로세서가 아닌, Arm 아키텍처 기반의 ‘퀄컴 스냅드래곤 X 엘리트’ 프로세서를 탑재한 제품에 최신 ‘윈도11 24H2’ 버전을 탑재했다. 사실, Arm 아키텍처를 위한 윈도의 존재는 어느날 갑자기 나온 것이 아니지만, 이 제품이 기존의 x86 기반 PC 시장에 직접적으로 경쟁하는 위치로 등장한 것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이례적인 모습이다. 마이크로소프트는 궁극적으로 윈도의 x86 의존성을 떠나 ‘아키텍처 중립적’ 플랫폼을 추구하는 듯한 모습도 보인다.
이 ‘Arm 용 윈도’의 가장 큰 장점은 기존 x86용 윈도를 가장 잘 알고 있는 마이크로소프트인 만큼, x86과 전혀 호환성이 없는 Arm 환경에서도 기본적인 x86용 윈도를 위한 애플리케이션 호환성을 제공하기에 가장 유리한 위치에 있다는 것이다.
윈도 환경을 위한 최신 애플리케이션 플랫폼들은 이제 ‘크로스 플랫폼’을 전제로 두는 모습이다. 이 경우, 개발자들은 운영체제와의 호환성만 맞추고, 운영체제가 프로그램과 하드웨어간의 호환성을 책임지는 형태가 된다. 개발자가 하드웨어 아키텍처에 신경쓸 필요가 거의 없어진다.
한편,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 운영체제는 흔히 ‘x86’ 프로세서를 위한 운영체제로 유명하지만 꼭 x86에서만 사용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멀리 보면, 1990년대의 ‘윈도 NT(Windows NT)’ 계열은 당대의 x86 프로세서 뿐만 아니라 DEC의 알파나, 애플과 IBM, 모토로라가 함께 했던 ‘파워PC(PowerPC)’ 아키텍처 등에서도 사용할 수 있었다. Arm 아키텍처 지원은 ‘윈도 8’부터 시작됐고, ‘윈도 10’에 이르러서는 ‘윈도 폰’과 ‘윈도 RT’ 등이 모두 ‘윈도 10’ 브랜드로 들어왔으며, 현재의 ‘Arm용 윈도’는 2017년 12월 등장해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 ‘윈도’ 환경을 벗어난 ‘x86’ PC의 모습
개인용 컴퓨터 시장에서 인텔의 ‘x86’ 아키텍처 기반 프로세서와 이에 호환 가능한 프로세서를 사용한 PC는 가장 널리 보급된 만큼, 이 환경에서 ‘윈도’의 대안 또한 오랜 기간동안 다양한 형태로 논의돼 온 바 있다. 이 중 ‘리눅스(Linux)’는 제법 오랜 시간동안 윈도 뿐만 아니라 다양한 상용 운영체제의 대안으로 다뤄지며, 지금은 서버와 임베디드 디바이스 등 PC용 운영체제 이외의 시장에서는 실제로 활발하게 활용되고 있다.
이제 서버로의 리눅스가 아닌 ‘PC’로의 리눅스 또한 제법 훌륭한 수준에 이르렀지만, 지금까지 윈도만 알던 사용자가 갑자기 리눅스 환경을 쓰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일단 가장 큰 문제는 생태계의 ‘생소함’이다. 특히 지금까지 사용하던 익숙한 프로그램들을 새로운 프로그램으로 바꿔야 한다는 점이 가장 클 것이다. 특히 윈도 환경에 최적화된 마이크로소프트 오피스와 어도비 크리에이티브 클라우드 등 상용 프로그램을 주로 사용하고 있었다면, 이들 프로그램의 ‘대안’을 찾아야 하는 리눅스는 적응이 힘든 존재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 이런 상황은 제법 바뀌었다. 특히, 모바일에서부터 번져 나온 ‘멀티 플랫폼’ 지원과 웹의 확장은 이제 PC에서도 윈도만이 가능한 영역을 크게 줄였다. 대신, 이제는 PC 운영체제보다 웹 브라우저가 표준 플랫폼으로 자리잡는 모습인데, 대표적인 사례가 ‘구글 크롬’이다. 웹 기반의 사용 환경이라면, 이제 ‘크롬’을 쓸 수 있다면 운영체제나 하드웨어 아키텍처는 뭐든 상관 없는 시대가 현실화된 것이다.
이에, 이제는 웹 환경을 주로 사용하고 기존 상용 프로그램의 ‘대안’에 적응할 각오가 됐다면 윈도 대신 최신 리눅스 배포판을 쓰더라도 의외로 큰 위화감 없이 쓸 수 있을 정도가 됐다. 이런 콘셉트를 극단적으로 현실화한 것이 바로 ‘크롬OS’인데, 기술적으로는 리눅스 위에 간단한 UI(User Interface: 사용자 인터페이스)와 ‘크롬’ 브라우저를 올려서 아주 가볍게 만든 것이다. 여기에 좀 더 자유로운 프로그램 설치 같은 부분이 필요하다면 일반적인 리눅스 배포판을 선택해 사용하면 된다.
한편, 국내에서도 이러한 방향성에 따른 결과가 나오고 있다. 먼저, 브라우저 중심의 생태계를 추구하는 것으로는 네이버의 ‘웨일OS(WhaleOS)’와 이를 탑재한 ‘웨일북(Whalebook)’이 있다. 이는 ‘크롬OS’와 비슷한 기술적 구성에서 브라우저를 ‘네이버 웨일’로 맞추고 네이버의 생태계에 최적화한 구성이라고 보면 된다. 또한 리눅스 기반의 국내 대안 운영체제로는 ‘구름OS’가 있는데, 현재 한글과컴퓨터와 티맥스소프트가 이에 기반한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
익숙한 윈도 환경을 벗어났을 때, 사실 대부분의 PC 활용에 필요한 소프트웨어는 리눅스 이외의 환경에서도 다양한 ‘대안’ 이 있다. 일단 웹이 중심이 되는 시대에 표준이라 할 만한 ‘크롬’ 브라우저는 다양한 아키텍처와 플랫폼을 공식 지원해서, 이 부분에서의 애로사항은 이제 없다. 그리고 문서 작성이나 이미지 수정, 영상 편집 등 다양한 작업을 위한 수많은 ‘대안’들이 이미 나와 있으며, 때로는 이러한 대안들이 대안을 넘어 주류가 된 경우도 많다.
하지만 아직 몇몇 영역은 대안이 마땅찮은 경우가 있는데, 특히 ‘한글’과 ‘게임’이 그렇다. 이러한 고민을 해결하기 위한 시도도 벌써 십수년에 걸쳐 이어지며 가시적인 성과를 내기 시작하고 있다. 대표적인 시도가 ‘와인(WINE)’과 ‘프로톤(Proton)’이다. 와인은 윈도 환경에서 프로그램을 실행하는 데 필요한 API(Application Programming Interface)를 리눅스 환경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전환해, 윈도용 프로그램을 리눅스에서도 활용할 수 있게 만든 프로젝트다.
윈도가 절대적인 ‘표준’으로 자리잡은 PC 게이밍 영역에도 제법 주목할 만한 변화가 나오고 있다. 와인의 파생 프로젝트로 알려진 ‘프로톤(Proton)’이 주인공인데, 이를 주목해야 할 이유는 ‘스팀(Steam)’ 플랫폼으로 유명한 ‘밸브(Valve)’가 이를 지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스팀에 올라온 윈도용 게임 수천 개를 ‘프로톤’을 통해 실행할 수 있고, 밸브의 게이밍 UMPC(Ultra-Mobile Personal Computer) ‘스팀 덱(Steam Deck)’도 리눅스와 프로톤을 기반으로 한 전용 ‘스팀OS’를 사용하고 있을 정도다.
‘윈텔’ 벗어난 환경도 이제는 충분히 ‘현실’
아예 ‘x86’ 프로세서와 ‘윈도’ 운영체제를 벗어난 환경은 어떨까? 사실 우리는 이미 이런 환경을 아주 익숙하게 쓰고 있다. 대표적으로, 이제는 모바일 플랫폼의 대세로 자리잡은 ‘안드로이드’의 기본 구성은 ‘Arm 아키텍처’와 ‘리눅스’, 그리고 특유의 모바일 UI가 조합된 것이다. 사실 안드로이드는 꼭 Arm 아키텍처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닌데, 인텔이 모바일용 SoC(시스템 온 칩)를 만들던 시절에는 x86용 안드로이드가 있었다. 하지만 인텔이 이 부분에서 실질적으로 철수한 이후에는 x86용 안드로이드의 개발도 지지부진해졌다.
그러면 이런 모바일 기반의 환경이 PC를 대체할 수 있을까? 사실 이는 충분히 가능하고, PC 시장은 이미 스마트폰과 태블릿PC의 습격을 꽤나 심각히 받은 바 있다. 이미 PC용 x86 아키텍처 기반 프로세서와 모바일용 Arm 아키텍처 기반 프로세서의 체급 차이는 제법 좁혀졌고, 소프트웨어 생태계 또한 변했다. 심지어, 애플은 이제 ‘맥’과 ‘아이패드’에 같은 M시리즈 칩을 사용해, 맥과 아이패드의 차이는 운영체제와 폼팩터의 차이 정도가 됐다.
PC 시장이 태블릿 시장의 습격을 방어한 데는 키보드가 기본인 노트북 PC 폼팩터 특유의 생산성과 사용자의 ‘익숙함’이 큰 요인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일반적인 웹 기반 작업 환경이나 문서 작성에서부터 미디어 감상, 콘텐츠 제작까지 PC 사용의 이유 중 상당 부분은 이제 태블릿 PC로도 충분히 할 수 있다. 오히려 다양한 앱 생태계에 기반해, 미디어 감상이나 스트리밍 서비스 활용 등은 모바일이나 태블릿이 더 편리하게 느껴질 정도다.
PC 사용자들이 모바일 환경에서 작업할 때 느끼는 멀티태스킹의 ‘답답함’ 같은 부분은 사용자 인터페이스의 개선으로 극복할 수 있을 부분이다. 예를 들면 삼성의 갤럭시 탭 등에 있는 ‘덱스(Dex)’ 모드나 안드로이드에서 자체 지원하는 ‘데스크톱 모드’ 등이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구글은 차기 안드로이드 버전에서 데스크톱 모드를 대폭 업그레이드할 예정인 것으로도 알려졌다.
앞으로 PC 시장에서 기술적 ‘플랫폼’은 좀 더 사소한 취향 같은 선택이 될 수도 있을 것 같고, 지금의 장점이 앞으로의 우위까지 장담해 주지는 못할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이런 ‘다양성’을 인정하고 폼팩터의 최적화 등으로 사용자의 ‘경험’에 좀 더 집중하는 것이 중요할 수도 있겠다. 이는 전통적인 ‘노트북’이 태블릿에 비견될 정도로 얇고 가벼워지는 것과 ‘태블릿’에 펜과 커버형 키보드 조합이 기본으로 제시되는 움직임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또한 앞으로는 오히려 화면 크기와 무게 등 본질적인 ‘물리적’ 요건에 대한 고찰이 중요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권용만 기자 yongman.kwon@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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