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테크 공세에도 엔비디아 지위 여전...애플식 ‘월드가든’의 힘
||2024.08.13
||2024.08.13
[디지털투데이 황치규 기자] 스타트업들을 비롯해 구글,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등 이름 만으로 반은 먹고 들어가는 빅테크 기업들까지 AI 칩으로 엔비디아에 도전장을 던지고 있지만 엔비디아의 위상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하다.
빅테크들도 엔비디아가 쌓아 놓은 진입 장벽을 뛰어 넘는데 애를 먹고 있는 상황이다. 이와 관련해 엔비디아가 구축한 GPU 역량 외에 소프트웨어 경쟁력이 점점 주목을 받고 있다. 최근에는 반독점 당국도 엔비디아 소프트웨어 부문을 비중있게 살펴보기 시작했다.
엔비디아는 지난 20여 년에 걸쳐 자사 칩 기반으로 소프트웨어와 AI 시스템을 개발하는 개발자들 지원에 공을 들였다. 이를 기반으로 GPU 칩과 소프트웨어를 아우르는 생태계를 구축했다. GPU 프로그래밍 언어인 쿠다(CUDA)를 포함해 엔비디아 소프트웨어는 엔비디아 칩만 지원한다.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서비스를 연결하는 애플식 월드가든(walled garden) 모델과 본질적으로 비슷한 구조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는 AI 구축에 필요한 칩부터 소프트웨어까지 모두 제공하는 전략을 강조하며 이를 풀스택 컴퓨팅으로 정의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 최근 보도에 따르면 엔비디아 월드가든 모델은 엔비디아가 빅테크들 공세서도 영향력을 유지하는 핵심적인 키워드다. 구글, 아마존 같은 빅테크 기업들과 경쟁 속에서도 엔비디아가 향후 몇년 간 시장 점유율을 의미 있는 수준으로 잃지 않을 가능성이 높은 이유라고 WSJ은 전했다.
경쟁사가 저렴한 AI 칩들을 내놔도 엔비디아 고객들 입장에선 그동안 사용해온 소프트웨어 때문에 다른 칩으로 바꾸기가 쉽지 않다. 소프트웨어 강력한 '해자' 역할을 해주고 있다는 얘기다.
이는 또 장기적으로 엔비디아를 상대로한 경쟁이 칩 설계 뿐만 아니라 소프트웨어에도 집중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WSJ은 덧붙였다. 경쟁사들은 장기적으로 엔비디아가 쳐놓은 진입 장벽을 우회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기 위해 적극 나설 것이란 설명이다.
엔비디아는 1993년 설립됐다. 당시 주특기는 비디오 게임 이미지 렌더링 칩이었다. 이런 가운데 엔비디아는 2007년 GPU 프로그래밍 언어인 쿠다(CUDA)를 발표하면서 게임을 넘어 판을 키우는 발판을 마련한다. 쿠다를 기반으로 엔비디아 GPU는 물리 및 화학 시뮬레이션 등 다양한 분야 작업을 수행할 수 있는 보다 범용적인 칩으로 탈바꿈했다고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WSJ은 쿠다에 대해 3D 그래픽 및 비디오 게임과 같은 애플리케이션을 위해 엔비디아 칩을 사용해 암호화 알고리즘 및 암호 화폐 채굴과 같은 비그래픽 소프트웨어를 실행하는 방법이라는 당시 에는 누가도 해결하지 못했던 문제에 대한 해법이었다고 전했다.
쿠다를 기반으로 엔비디아는 AI 소프트웨어에도 막강 지위를 확보했고 이는 엔비디아가 애플, 마이크로소프트와 맞먹는 시가총액을 자랑하는 테크 기업으로 부상하는 계기가 됐다.
쿠다는 시작일 뿐이었다. 엔비디아는 엔비디아는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이 필요로 하는 특화된 코드 라이브러리를 내놓으며 개발자들이 인텔과 AMD 같은 범용 프로세서로는 불가능했던 엄청난 양의작업을 GPU에서 수행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6월 회사측 발표에 따르면 쿠다는 500개 이상 코드 라이브러리와 600개 이상 AI 모델들을 포함하고 있다. 4만개 정도 기업들에서 500만명 이상 개발자들이 사용하는 3700개 가량 GPU 기반 애플리케이션을 지원하고 있다.
엔비디아가 소프트웨어에 얼마나 공을 들이는지는 채용 전략에서도 엿볼 수 있다. 엔비디아는 지난 몇년 간 하드웨어 보다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들을 보다 많이 채용했다고 WSJ은 전했다.
엔비디아는 소프트웨어 전략 강화를 위한 인수합병에도 공격적이다. 엔비디아는 올해 들어서만 스타트업 4곳을 인수했다. 엔비디아는 4월 GPU 최적화 소프트웨어 등을 제공하는 런에이아이(Run:ai)를 7억달러 규모에 인수했고 5월에는 AI 개발자들이 클라우드, 엣지, 모바일 같은 환경에서 AI 모델을 개발, 최적화, 배치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딥러닝 개발 플랫폼 기업 데시도 인수했다.
7월에는쇼어라인과 브렉브데브(Brev.dev)도 인수했다. 브레드데브는 GPU와 GPU 기반 클라우드 인스턴스 기반으로 AI 모델을 구축, 훈련, 배치할 수 있는 AI 및 머신러닝(ML) 개발 플랫폼을 제공하고 있다. 쇼어라인은 컴퓨터 시스템에서 문제 및 사고를 찾아 이를 자동으로 수정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소프트웨어가 주특기다.
엔비디아가 소프트웨어 역량 강화에 속도를 내고 있는 가운데, 도전자들 공세도 점점 구체화되는 양상이다. 3월 로이터통신 보도에 따르면 퀄컴, 구글, 인텔 등 유력 테크 기업들이 쿠다와 경쟁할 소프트웨어 개발을 위한 컨소시엄인 UXL 재단(Foundation)이 활동을 본격화하고 있다.
퀄컴에서 AI 및 머신러닝 부문을 총괄하는 비네쉬 수쿠마르(Vinesh Sukumar)는 "실제로 개발자들에게 엔비디아 플랫폼에서 마이그레이션하는 방법을 보여주겠다"고 말했다. 지난해 9월 설립된 UXL재단은 인텔이 개발한 원API(OneAPI) 기술 등을 활용해 여러 타입 AI 가속 칩을 지원하는 소프트웨어 및 툴들을 개발할 계획이다. 칩과 하드웨어에 상관 없이 어떤 기기에서도 돌아가는 소프트웨어를 오픈소스 방식으로 제공한다는 목표다.
그럼에도 엔비디아 지위가 당장에 흔들리지는 않을 것이란 관측이 많다. 시티리서치의 아티프 말릭 애널리스트는 "엔비디아가 2~3년 동안은 AI 관련 칩 시장에서 여전히 90% 가량 점유율을 유지할 것이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