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억 벤츠車에 ‘中듣보잡’ 배터리가…'청라 화재 포비아'에 먼저 움직인 '이 회사'
||2024.08.12
||2024.08.12
완성차 업계에서 자사의 전기자동차에 탑재된 배터리 제조사 정보를 공개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지난 1일 인천 서구 청라에서 화재가 발생한 메르세데스-벤츠 전기차에 상대적으로 저가인 중국산 배터리가 탑재됐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이에 대한 포비아(Phobia, 공포증)가 확산할 조짐이 보이자 현대차 등이 선제적 조치에 나선 것이다. 그러나 정작 이번 화재 사고를 초래한 벤츠코리아는 여전히 배터리 제조사 공개에 대해 미온적 입장을 보이고 있어 소비자들의 원성을 사고 있다.
12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현대자동차는 국내 완성차 업계에서 처음으로 현대차·제네시스 전기차 13종에 들어가는 배터리 제조사를 전면 공개했다. 현대차 홈페이지에 공개된 정보를 보면 소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인 ‘코나 일렉트릭’ 2세대에 중국 1위 업체 CATL 배터리를 쓴 것 외에는 모두 SK온과 LG에너지솔루션 제품이 들어간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더불어 현대차는 신형 전기차를 내놓을 때마다 배터리 제조사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기로 내부 방침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조만간 현대차가 내놓을 캐스퍼 일렉트릭과 아이오닉9 등도 배터리 정보를 홈페이지 등에 공지할 것으로 보인다.
기아도 조만간 배터리 제조사를 공개하겠다는 방침을 세우고 관련 준비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수입차 판매량 1위를 기록하고 있는 BMW 또한 배터리 제조사 정보 공개를 추진하고 있다.
업계의 이같은 움직임은 청라 벤츠 전기차 화재가 단초가 됐다. 당시 사고 차량으로 국내 판매가가 1억원이 넘는 벤츠 EQE에는 당초 국내 소비자들에게 중국의 1위 배터리 업체 CATL의 제품의 탑재된 것으로 알려진 바 있다. 그러나 뚜껑을 열어보니 사실이 아니었다. 이 차에는 세계 10위로 비교적 덜 알려진 업체인 중국 '파라시스(Farasis)' 제품이 탑재된 사실이 지난 5일 국토교통부의 조사 결과 확인됐다.
게다가 탑재된 파라시스의 삼원계 니켈·코발트·망간(NCM) 배터리는 2021년 중국에서 화재 위험으로 리콜을 실시해 품질 우려를 키웠다. 중국 배터리사들은 주력 제품인 이원계 리튬·인산철(LFP) 배터리에서는 기술력을 갖춘 것으로 평가받지만, 뒤늦게 뛰어든 삼원계(NCM·NCA) 배터리의 경우 배터리 품질에 대한 의구심이 지속돼 왔다.
특히 이번 사고에도 벤츠코리아는 여전히 배터리 제조사 공개에 대해 미온적 입장을 보이고 있어 소비자들의 집중 포화를 맞고 있다. 벤츠코리아는 최근 주요 경영진이 벤츠 전기차 화재로 피해를 입은 인천 청라 아파트를 직접 찾아 주민들에게 45억원의 인도적 지원을 약속하며 진화에 나섰지만, 비판 여론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벤츠코리아 측은 "경쟁 관계 등의 이유로 공급업체 정보는 공개하지 않는다"는 비공개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이에 소비자들은 "벤츠가 1억원이 넘는 고가 차량에 품질이 떨어지는 듣도 보도 못한 배터리를 탑재해 놓고도 반성하지 않고 있다"는 실망감을 쏟아내고 있다.
벤츠코리아가 이 같은 입장을 고수하는 이유는 자동차 회사는 어떤 회사의 배터리를 자사 차량에 탑재했는지, 배터리가 탑재된 차량의 비중이 어느 정도인지 등을 영업비밀로 취급하기 때문이다. 관련 내용이 알려지면 향후 다른 업체와의 협상에서 불리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배터리뿐만 아니라 차량에 들어가는 부품의 경우에도 어떤 회사의 부품을 사용하는지 공개하는 경우가 드물다.
다만 이번 화재 사고와 더불어 최근 전기차 관련 이슈가 잇따라 발생하면서 배터리만큼은 정보 접근성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전문가들은 전기차 가격의 40% 이상을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진 배터리를 소비자들이 직접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특히 유럽은 2026년부터 전기차 제조업체들이 소비자에게 배터리 제조사 정보를 공개하도록 의무화했다. 미국 일부 주 정부도 배터리 관련 정보를 알리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우리 정부도 이날 전기차 화재를 예방하기 위한 긴급회의를 개최했다. 가장 관심을 끄는 것은 배터리 제조사 공개 여부다. 자동차 제조사가 전기차 배터리 제조사를 차량 제원 안내에 포함해 공개하는 방안 등을 검토하고 있다.
정부는 또 오는 13일 국내 완성차 제조사와 수입사와 함께 전기차 안전 점검 회의를 열어 이에 대한 입장을 들을 예정이다. 화재의 주된 이유 중 하나로 꼽히는 '과충전'을 막을 방안도 논의된다. 단기적으로는 충전율과 충전시간을 제한하고, 중장기적으로는 과충전을 방지할 장치 부착을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아울러 화재 안전성에 취약한 배터리를 장착하면 보조금 지급을 줄이는 방식도 검토하고 있다.
100% 완충 전기차는 그렇지 않은 차보다 화재 발생 시 파급력이 훨씬 강하다. 배터리 잔량이 일정 수준을 넘지 않도록 규제하고, 충전 시간을 제한하는 방식으로 과충전을 예방할 수 있다.
지난 9일 서울시는 다음 달 말까지 '공동주택 관리규약 준칙'을 개정해 공동주택 지하 주차장에 90% 이하로 충전을 제한한 전기차만 출입할 수 있도록 권고한다고 발표했다.
지상 전기차 충전기를 확대하는 안도 유력하게 검토된다. 현행 규정상 지상 전기차 충전시설 설치를 강제할 수 없기 때문에 설치 비용을 일부 지원하는 식으로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것 등을 고려할 가능성이 있다. 전기차 화재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지하 주차장 스프링클러를 더 촘촘하게 설치하고 반응 속도를 높이는 방안도 검토할 것으로 파악됐다.